강릉은 왜 커피가 유명할까?

미식

강릉은 왜 커피가 유명할까?

디스커버코리아 강릉편

누구든 한 번쯤 그런 경험해본 적 있을거에요. 여느 날과 같이 주문한 커피를 받아들었는데, 사라진 크레마와 미지근한 온도에 실망을 안고 돌아섰던 일. 맛있는 커피 한 잔이 간절했던 그런 날. 어디든 상관없으니 그저 맛있는 커피가 마시고 싶은 날엔 유독 강릉이 먼저 떠오릅니다. 산과 바다, 커피는 무조건 봐야 한단 말이 있을 정도로 강릉의 커피는 유명하니까요. 그러다 문득 왜? 어떻게? 무슨 맛이길래? 하는 호기심에 그 이유를 찾아 강릉으로 떠나게 되었습니다.

안목해변 커피자판기 거리

커피는 필수 데이트코스

한 걸음에 달려간 안목해변 커피 거리엔 카페가 줄지어 향긋한 향을 뿜어내고 있었어요. 길을 따라 걷던 중간중간엔 오래된 자판기가 놓여있었고,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서 커피를 뽑아 마시는 것을 알게 되었죠. 고급진 카페들 사이에서 400백원짜리 자판기 커피가 인기라니. 의문을 가질 법한 일이지만, 사실 여기에는 낭만적인 사연이 숨어있습니다.

1980년대 안목해변은 소위 말하는 연인들의 필수코스였고, 자판기에서 뽑은 따뜻한 커피와 함께 해안가를 따라 걷는 것은 당시 가장 로맨틱한 데이트였습니다. 안목해변 데이트가 입소문을 타고 점점 더 많은 인기를 얻으면서 커피 자판기의 개수는 계속 늘어났고, 1.2km나 되는 해안가에 자판기 행렬이 이어지게 되었죠. 수많은 자판기들은 연인들의 손길을 받기 위해 특별한 무언가가 필요했고, 헤이즐넛과 콩가루 등 다양한 맛을 가미한 커피가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이때부터 안목해변 자판기 거리에는 취향을 고려하는 커피 문화가 생겨났고, 이는 점차 발전해서 카페 거리로까지 성장하게 되었던 거죠.

과거의 낭만을 떠올리며, 잠시 바닷가에 앉아 즐겨본 자판기 커피는 역시나 매력적이었어요. 달달하게 혀를 감싸안던 그 맛. 왜 그리도 연인들에게 사랑받았는지 알 것 같은 맛이었습니다.

유일한 1세대 현역 바리스타, 박이추

1대 바리스타는 강릉에 있어요

강릉의 커피가 더욱 유명하게 된 것은 2000년도 즈음 부터라고 볼 수 있어요. 바로 1세대 바리스타 박이추님이 강릉에 자리를 잡은 시기이죠. 박이추님은 80년대 당시 원두커피 문화가 발달했던 일본에서 공부를 마치고, 서울에서 바리스타로 첫 발걸음을 내딛으셨다고 해요. 원두커피가 생소하던 한국에 커피 문화를 퍼트리셨던거죠. 이후 장사가 아닌 사람을 위해 커피를 내리고 싶다는 신념에 따라 번잡스런 서울을 떠나게 되었고, 커피 문화는 강릉에까지 퍼지게 된 것입니다.

안목해변의 자판기 커피도 맛보았는데, 1대 바리스타의 커피는 꼭 맛봐야겠다 싶어 찾아간 카페에선 그의 커피 신념이 확고하게 느껴졌습니다. "안녕하세요, 반가워요 이리와서 앉으세요" 향긋한 커피와 함께 다정하게 맞이해주시던 박이추님. 첫인사는 다소 어색했지만 커피에 대한 질문을 늘어놓자 눈빛을 반짝이며, 이야기를 시작해주었어요. "아침 일찍부터 나와 오전에는 원두콩을 볶고, 추출은 나만 하죠. 커피는 손맛이 크게 좌우하거든" 카페의 모든 커피는 박이추님이 직접 내린다는 말은 사실이었습니다. 원두 선정부터 로스팅, 추출까지 한 잔의 커피를 내리기 위한 긴 과정에서 그 분의 손길이 빠지는 곳은 하나도 없었죠. 커피는 손맛이라고 재차 강조하며 설명해주신 추출 방법은 가히 예술에 가까웠습니다.

원두의 종류, 불의 세기, 물의 온도, 일정한 속도와 방향, 계산된 시간, 균일한 힘 등 핸드드립 커피는 고도의 실력을 모두 담고 있다고 해요. 심지어 사람, 날씨, 장소 등 소소한 것 하나에도 맛이 달라진다고 합니다. 때문에 제 아무리 같은 원두로 바리스타를 따라한들 그때 먹었던 그 맛이 나오기는 힘든 것이죠.

우리는 에스프레소 기계가 없어요. 다 손으로 하지, 고전적인 방법일지는 몰라도 유행과 돈을 쫓는 커피가 아니라 사람을 위한 한 잔을 내리고 싶어요.

박이추님과의 대화 중에서

매일 반복되는 커피 추출 과정으로 인해 팔이 불편함에도 불구하고, 핸드드립만을 고집하는 이유는 명확했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1대 바리스타의 커피는 어떤 맛일까. 궁금증이 더해지던 찰나, 한 잔 내려주시겠다는 말씀에 냉큼 맛있는 커피 추천을 부탁드렸습니다.

"커피는 쓴 맛, 산미가 넘치는 맛, 부드러운 맛 등 특색이 다 다르기에 모두에게 추천할 수 있는 대표 커피는 없어요" 커피추천 요청에 박이추님은 오히려 취향을 물어보셨고, 평소 라떼를 즐겨마신다는 대답에 우유가 들어간다는 카페오레를 만들어주셨습니다. 핸드드립은 블랙커피만이 익숙했기에 카페오레의 제조 과정은 굉장히 신선했어요. 하얀색 냉각 얼음에 추출한 커피를 부어 열을 식힌 후, 남은 얼음을 제거하고 그 맛이 유지될 수 있도록 커피얼음을 넣습니다. 그리고 우유 1스푼을 더해주면 카페오레가 완성이 되죠.

독특하게도 카페오레는 일반 잔에 나오지 않아요. 국그릇같이 생긴 접시에 담겨나온 커피를 숟가락으로 떠먹는 방식이죠. 다소 낯선 방식이었지만, 한 모금씩 은은하게 퍼지는 맛을 감상하다보니 "커피를 음미한다"는 말을 비로소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피곤함을 깨기 위해 마시던 커피와는 다른 여유를 가진 맛이었죠. 처음엔 시럽이 함께 나온 모습을 보고 쌉쌀함을 짐작했지만, 예상외의 맛이 입 안에 퍼졌습니다. 부드러움과 고소함, 잔잔하게 스며드는 향긋함. 그리고 모든 것이 조화롭게 퍼지는 안정적인 느낌까지. "1대 바리스타가 강릉으로 커피문화를 데려왔다" 라는 표현이 정확하게 느껴지는 순간이었어요.

일찍이 커피취향을 고려했던 자판기 거리와 1대 바리스타의 정착. 단순히 강릉 커피에 대해 알고싶어 떠나온 여행은 생각외로 신선했고, 낭만적인 모험이 되었습니다. 유난히도 맛있는 커피가 간절해지는 날, 여러분도 강릉으로 떠나보는 것은 어떨까요.
강릉커피거리
강원 강릉시 창해로 14번길 20-1
보헤미안 카페(연곡면)
강원 강릉시 연곡면 홍질목길 55-11
김강지야놀자 에디터

고양이와 여행을 좋아합니다.

#여행꿀팁#카페투어#강원도 강릉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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