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부신 여름의 조각 영화 속 수영장

칼럼

눈부신 여름의 조각 영화 속 수영장

6편의 영화 속 매력적인 수영장에 대한 단상

소년의 여름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1983년의 여름. 이탈리아 한 마을에서 휴가 중인 17살 소년 엘리오는 아버지의 논문을 돕기 위해 미국에서 이곳까지 온 젊은 학자 올리브와 함께 살게 된다. 엘리오는 6주간 집을 방문한 올리브가 영 탐탁지가 않다. 빨리 여름이 지나가서 귀찮은 손님맞이를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마음뿐이다. 그러나 그 마음은 점점 다른 감정으로 발전하기 시작한다. 17살 소년과 젊은 학자의 사랑을 다룬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은 ‘장소의 영화’라고 할 법하다. 이탈리아 북부의 멋진 소도시와 시골 별장을 주 무대로 하는 이 영화 속에서 주인공 엘리오와 올리버는 끝없이 어딘가를 돌아다닌다.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은 모든 로케이션을 섬세하게 선별한 뒤 촬영했다. 특히 두 사람이 오후를 보내는 수영장 장면은 영화의 절정 중 하나다. 성적인 긴장감이 흐르는 가운데 엘리오는 조심스럽게 올리브를 바라보며 그에 대한 연정을 확인한다. 그 순간은 정말이지 마법 같다.
  • 감독 : 루카 구아다니노
  • 출연 : 티모시 샬라메, 아미 해머
  • 개봉 : 2018. 03

스릴러가 되는 순간 '스위밍 풀'
많은 영화감독들은 수영장을 주인공의 욕망이 교차하는 장소로 활용하곤 한다. 프랑소와 오종의 이 섹시한 프랑스 스릴러 영화도 마찬가지다.영국인 탐정소설가인 사라는 출판사 편집장 권유로 프랑스 남부로 휴가를 떠난다. 조용하게 소설을 써 내려갈 생각을 하던 찰나, 갑자기 편집장의 딸이라는 줄리가 별장에 찾아온다. 줄리는 떠날 생각이 없다. 매일 밤 남자들을 집으로 끌어들인다. 불쾌한 날들이 이어지던 중 사라는 점점 줄리라는 인물에 끌리기 시작한다. 이 영화를 보게 된다면 수영장이라는 공간을 그저 편안한 휴식 공간으로만 여기지는 않을 지도 모른다. 프랑소와 오종이 촘촘하게 엮어낸 이 스릴러에서 수영장은 줄리를 향한 사라의 온갖 감정이 교차하는 일종의 영화적 상징이다. 번들거리는 태양 아래서 일광욕을 즐기는 배우 루디빈 사니에의 앙큼할 정도로 도발적인 모습으로도 영원히 기억될 영화다.
  • 감독 : 프랑소와 오종
  • 출연 : 샤롯 램플링, 루디빈 사니에
  • 개봉 : 2003. 08

이토록 달콤한 로맨스 '로미오와 줄리엣'
이 영화에는 수많은 명장면이 있다. 수족관에서 처음 만나는 장면과 가면무도회에서 줄리엣이 로미오를 계속 쳐다보는 장면은 가슴을 한여름 밤 사탕처럼 녹인다. 수영장에서 줄리엣이 사랑을 고백하는 장면도 빼놓을 수 없다. 갑작스러운 로미오의 등장으로 줄리엣은 발을 헛디딘다. 둘은 수영장에 빠지고 만다. “당신 사랑을 못 받는다면 이대로 들켜버리는 게 낫소.”라고 말하는 로미오에게 줄리엣은 말한다. “저를 사랑하시나요? 그 말을 믿겠어요.” 그리고 둘은 다시 수영장 속에서 키스를 나눈다. 그렇다. 수영장을 로맨스의 배경으로 가장 멋들어지게 다룬 영화로 역시 ‘로미오와 줄리엣’을 꼽을 수밖에 없다. 지나치게 달달하긴 하지만 우리에게는 종종 영화적 달콤함이 필요하다.
  • 감독 : 바즈 루어만
  • 출연 :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클레어 데인즈
  • 개봉 : 1996. 12

치유의 공간 '수영장'
슬로 무비라는 게 있다. 특히 일본에서 유행하는 이 장르는 잠시 멈춰 서서 느린 속도의 삶을 보여주는 영화들이다. ‘수영장’ 역시 그렇다. ‘카모메 식당’이 헬싱키를 소재로 느림의 미학을 보여줬고 ‘안경’이 오키나와를 배경으로 느린 삶을 찬양했다면, ‘수영장’은 태국 치앙마이를 통해 같은 이야기를 관객에게 전달한다. 당연히 여기에는 커다란 내러티브는 없다. 대신 카메라는 치앙마이의 게스트하우스에 사는 인간 군상의 일상을 조용히 지켜본다. 이들이 상처받은 마음을 달래는 공간은 수영장이다. 주인공들은 잔잔한 수영장을 바라보며 스스로의 마음을 치유한다. 느릿느릿 한 삶을 예찬하는 일본식 슬로 무비에 지쳐버린 사람에게는 영화 ‘수영장’이 아닌 진짜 수영장을 더 권하고 싶기는 하다.
  • 감독 : 오오모리 미카
  • 출연 : 카세 료, 고바야시 사토미
  • 개봉 : 2011. 03

영원한 클래식의 멋 '졸업'
아마도 이 리스트 중 가장 고전에 가까운 영화일 것이다. ‘졸업’은 자신보다 나이가 많은 여인인 로빈슨 부인과 불륜에 빠진 20대 청년 벤자민이 주인공이다. 이 영화에서 가장 유명한 장면은 벤자민이 결혼식에 쳐들어가 신부를 데리고 도망치는 마지막 장면일 것이다. 거기에 한 장면을 더하자면 역시 수영장이 등장하는 도입부다. 포크 록 듀오인 사이먼과 가펑클의 ‘The Sound of Silence’가 흘러나오는 이 수영장 장면은 벤자민과 로빈슨 부인 사이의 관계를 암시하는 동시에, 미래가 보이지 않는 청춘 벤자민의 성격을 잘 드러내 준다. 지나치게 옛날 영화라 보기 망설여진다고? ‘졸업’은 죽기 전에 꼭 보아야 할 가치가 있는 청춘 영화로 지금도 모던하기 짝이 없다. 사이먼과 가펑클이라는 천재 뮤지션들의 뮤직비디오처럼 관람해보는 것도 권한다.
  • 감독 : 마이크 니콜스
  • 출연 : 앤 밴크로프트, 더스틴 호프만
  • 개봉 : 1988. 11

기묘한 관계의 시작 '비거 스플래쉬'
제목인 ‘비거 스플래시’는 고여있는 물에 ‘더 큰 물결’이 일어난다는 의미다. 전설적인 록스타 마리안과 남편 폴은 이탈리아의 한 섬에서 휴가 중이다. 어느 날 마리안의 옛 연인인 음악 프로듀서 해리가 딸을 데리고 방문한다. 마리안과 해리의 숨겨진 과거가 점차 수면 위로 올라오기 시작하며 일순간 이탈리아의 섬의 수영장은 질투와 욕망으로 이글이글 타오르게 된다. ‘비거 스플래시’는 1969년작 알랭 들롱 주연의 프랑스 영화 ‘수영장’을 조금 느슨하게 리메이크한 작품이다.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의 감독이기도 한 루카 구아다니노는 영화 ‘수영장’에 오마주를 바치면서도 오리지널 영화를 자기 방식대로 변형하는 데 성공을 거뒀다. 틸다 스윈튼의 멋진 연기로도 기억될 영화다.
  • 감독 : 루카 구아다니노
  • 출연 : 틸다 스윈튼, 랄프 파인즈
  • 개봉 : 2016. 08
김도훈(@closer21)영화 칼럼니스트

영화 전문지 '씨네 21'과 남성 패션지 'GEEK'의 에디터, '허프포스트코리아' 편집장을 거쳤다. 영화는 물론 패션, 정치, 라이프스타일 등 다양한 분야에 걸친 취향을 글로 담아내는 일을 하고 있다. 그간의 산문을 엮은 저서 '우리 이제 낭만을 이야기합시다'를 펴냈다. 일러스트레이터 손은경(@thanksforbeingu) 에디터 박주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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